아무것도 안 하기 어려운 시대
자기 전 2~3시간에는 전자기기를 멀리하면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실천해보려고 노력해봤지만, 종이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방법 말고는 자꾸 핸드폰이나 태블릿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가게 됩니다. 요즘은 태블릿으로 책을 읽고 핸드폰으로 사람들과 연락합니다. 핸드폰만 켜면 뇌를 자극하는 최신 뉴스 기사가 계속 올라오고 유튜브에는 재밌고 공감되는 콘텐츠들이 가득합니다. 알고리즘은 우릴 더 헤어 나올 수 없도록 계속 붙잡고 있습니다. 이를 깨고 다른 일을 해야 할 때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합니다. 영화 <안경>은 전자기기뿐만 아니라 다른 잡다한 것들로부터 멀어져서 쉬고 싶을 때 꼭 보는 영화입니다. 가끔 마음이 조급해져서 열심히 하다가 갑자기 지쳐버릴 때 자주 보게 됩니다. 일상을 떠나 여행을 가도 쉬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면, 이 영화를 보면서 여행 스타일을 다시 돌아보며 휴식을 취하면 좋을 것입니다.
사색을 위한 곳
휴대전화가 있어도 연락이 닿을 수 없는 지역으로 떠나고 싶은 주인공 타에코는 본인의 몸처럼 큰 여행용 가방을 들고 작은 마을로 옵니다. 온통 풀밭이 가득하고 흔히 볼 수 있는 신호등이나 도로 표시가 없는 시골길을 지나고 예약한 숙소에 도착합니다. 민박집 주인인 유지는 여행 가방을 그냥 두면 정리를 도와준다고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이는 타에코는 본인이 직접 정리하겠다며 안내받은 방으로 들어갑니다. 식사하는 공간으로 온 타에코는 유지로부터 중요한 사람이 오니 저녁은 다 같이 밖에서 먹는다고 말하고 혼자서 저녁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떤 여인이 타에코의 방에서 아침인사를 하는 황당한 일을 겪게 됩니다. 밖으로 나가니 사람들은 이상해 보이는 아침 체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 같이 조식을 먹으면서 타에코는 관광할 만한 장소를 알려달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관광할 게 없는 곳이라며 이곳 사람들은 주로 사색을 한다고 말합니다. 사색을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처럼 보입니다. 이에 타에코는 투명한 바다가 인상적인 해변에 앉아서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해변에 나무로 된 간이식당에서 빙수를 파는 걸 보고 갔는데 그곳에는 아침에 타에코에 방에 무단침입을 한 여인인 사쿠라가 있습니다. 빙수 가게에서 학교 선생님인 하루나도 만나게 됩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핸드폰을 1주일쯤 꺼놔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마음도 편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녁에는 다 같이 바비큐 파티를 합니다. 이곳에서의 바비큐 파티는 아주 소박합니다. 맥주와 신선한 야채를 조금 늘어놓고 먹는 게 다입니다. 고기의 양도 아주 적어 보입니다. 요즘은 많이 먹는 먹방이 유행하는데 과식이나 폭식에 지쳤던 이 장면을 보며 조금은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날 아침 어김없이 사쿠라가 허락도 없이 방에 들어와 아침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고 타에코는 너무 황당하고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다른 숙소로 가버립니다. 새로 도착한 숙소는 더 이상합니다. 도착하자마자 농사일을 시키는 곳입니다. 우주 만물에 경의를 표하고 하루하루 감사하는 삶을 살자는 사이비 종교 같은 설명을 들은 타에코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도망치듯 또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항상 가지고 다니던 짐으로부터 해방
타에코는 도망쳐 나와 갈 곳이 막막해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다 지쳐 짐 위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이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사쿠라를 만나고 짐을 두고 사쿠라를 따라 다시 유지가 운영하는 민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이제 더 이상 사쿠라의 아침인사를 듣지 않게 됩니다. 타에코는 점점 이곳에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같이 바닷가재 요리를 먹고 해변에 가서 뜨개질하며 나름대로 적응합니다. 그리고 사쿠라의 빙수를 먹고 점점 사색에 잠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완전히 이곳의 주민처럼 보입니다. 뜨개질을 마친 타에코는 목도리를 만들고 사쿠라에게 선물했는지 이후에 사쿠라가 빨간 목도리를 하고 마을에 다시 찾아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안경이 벗겨지다
차를 타고 가는데 창밖을 보고 있던 타에코는 바람이 불어 안경이 벗겨지지만 이내 받아들이고 안경을 되찾으러 갈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안경은 여행 가면 꼭 관광해야 한다는 편견의 의미를 담고 있는 물건, 앞서 버린 여행 가방은 그동안 버리지 못한 마음의 짐을 대변하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소유의 개념이 바탕에 깔린 느낌입니다.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 같았던 여행용 가방도 이제는 언제 버렸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아침에 눈 뜨면 꼭 찾아야 하는, 그렇지만 세상을 보는 편견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안경도 스스로 벗는 게 아닌 외부 요인에 의해 강제로 벗겨졌지만, 오히려 후련해하는 표정입니다. 이를 통해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타에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디지털 디톡스
자극적인 음식을 먹다가 지치면 집밥이 생각납니다. 화려한 콘텐츠는 우리의 정신을 완전히 빼앗지만 계속 보다 보면 집밥 같은 콘텐츠가 생각날 것입니다. 일본 슬로 무비 장르들은 집밥과 같은 매력이 있습니다. 나무와 풀이 많은 시골 마을, 투명하고 깨끗해 보이는 바다의 풍경이 가득 담겨 있어 포근한 느낌을 줍니다.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음이 편안해지는 영화를 보며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도 고요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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